통합사회/행복과 경제적 안정

[02경제적 안정] 2. 항산(恒産)과 항심(恒心)

도량분계 2026. 3. 6. 14:48
반응형

https://youtu.be/Ic3f4BrXRYQ

백성들은 떳떳하고 일정한 항산(恒産)이 없으면 그로 인해 항심(恒心)도 없어질 것입니다.” (맹자 양혜왕편 7)

항산(恒産)은 일정한 소득, 일자리, 재산 등을 의미하고, 항심(恒心)은 떳떳하고 일정한 도덕적 마음을 뜻한다. 맹자는 경제적 안정이 도덕적 마음의 기반이 된다는 논리를 설파했다. 이는 인간에게 물질적 토대가 삶의 질과 정신적 행복을 보장하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임을 강조한 것이다.

같은 의미로 倉廩實而知禮節(창름실이지예절)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衣食足而知榮辱(의식족이지영욕)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란 표현도 있다. 이는 춘추시대 제나라의 정치가 관중(관자)의 사상을 담은 관자(管子)》 〈목민편(牧民篇)과 사마천의 사기(史記)》 〈관안열전에도 인용되어 널리 알려 져 있는 말이기도 하다.

항산과 항심이 모두 없는 상태는 사회적 안전망이 붕괴된 지점에서 마주하게 되는 비극적 심연이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생계형 범죄나 극한의 빈곤 속에서 자존감을 상실하고 냉소주의에 침잠한 소외 계층의 모습이 이를 대변한다.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빵 한 조각을 훔친 대가로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비극은 맹자가 경계했던 상황을 극명하게 투영한다.

국가는 빵을 훔치지 말라는 법적 금기만 공표했을 뿐 빵을 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경로는 열어주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맹자가 지적한 함정 그물이다. 경제적 안정을 담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존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 백성을 처벌하는 행위는 통치자가 국민을 함정에 빠뜨려 포획하는 망민(罔民)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 통치자가 형이상학적인 도덕 정치를 논하기에 앞서 민생의 안정을 정치의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맹자는 양혜왕에게 도덕적 명분을 내세우기 전에 먼저 토지를 분배하고 세제 혜택을 제공하여 백성의 경제적 기반인 항산을 우선적으로 보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통찰은 현대 국가가 실업 급여나 기초생활보장제도 같은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여 국민의 생존권을 수호하고 보편적 복지를 증진하려는 헌법적 가치와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맹자는 선비와 일반 백성을 구분하며 항산과 항심의 적용을 달리하였다. 생존과 복지 모두의 행복에 중요하기는 하나, 맹자의 또 다른 주장, 선비는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고, 일반 백성은 그렇지 못해, 항산이 없으면 방탕, 편벽, 간사, 사치에 빠지기 마련이라는 맹자의 주장은 간과되기 마련이다. (日無恒産而 有恒心者 惟士為能 若民則無恒産因無恒心苟無恒心放辟邪侈無不為已及陷於罪然後從而刑 之是罔民也焉有仁人在位罔民而可為也)

, 맹자는 일반 백성이 항산 없이는 방탕하고 편벽하며 사치스러운 악행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생활인'인 반면, 선비는 학문을 통해 의()와 예()를 체화한 '가치 지향적 리더'라고 보았다. , 무항산 항심이다. 공자가 가장 아꼈던 제자 안회(顔回)의 삶이 맹자가 말한 선비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누추한 거리에서 대나무 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물(일단사 일표음, 一簞食 一瓢飮)만으로 연명하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배움의 즐거움과 도덕적 항심을 잃지 않았다.

조선의 성리학을 따르는 선비들이 가난해도 자존심과 지조만큼은 굽히지 않았던 것도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 결과이다. 양반 선비는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내면의 가치관으로 버틸 수 있는 정신적 근력을 지닌 예외적인 존재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논리를 현대 사회에 비추어 볼 때 여러 의문점이 제기된다. 무항산의 상태에서 항심을 유지하는 일은 과거보다 훨씬 더 가혹한 시험대가 되었다. 조선의 선비처럼 무항산(無恒産)의 상태에서도 항심을 잃지 않는 도덕적 인격체가 과연 오늘날에도 존재하는가? 또는 가능하기는 한가? 현대 사회에서 맹자가 정의한 선비의 형상은 확고한 직업윤리를 가진 엘리트 전문가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지식인이 가장 엇비슷하기는 한데, 자본의 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현실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며 부당한 유혹을 뿌리치는 이들이 거의 없어 보이는 것은 왜 일까?

맹자의 시대에는 빈곤이 도덕적 타락의 원인이었으나 현대에는 오히려 과잉된 항산이 도덕적 감수성을 마비시키는 독소로 작용한다. 차고 넘치는 항산이 오히려 공감 능력을 퇴화시키고 법적 책임감마저 마비시키는 사례는 도처에 널려 있다. 이들에게 부는 도덕적 기반이 아니라 도덕적 의무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유급 면죄부로 작동한다. 경제적 결핍이 범죄의 유혹이 되듯, 경제적 과잉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이라는 더 정교한 형태의 항심 상실을 초래한다.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도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망을 교묘히 피하는 화이트칼라 범죄자들이나 갑질을 일삼는 자산가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차고 넘치는 항산을 갖춘 상류층이나 중산층이 항심을 잃고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빠져 있는 모순적인 현실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과거의 무항산이 당장의 끼니를 걱정하는 생존의 문제였다면 오늘날의 무항산은 타인과의 끝없는 비교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결핍에 가깝다. 항산은 넘쳐나되 항심이 없는 상태는 현대 자본주의가 낳은 가장 기괴한 풍경이다.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환경은 일상의 모든 순간을 경쟁과 전시의 장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이는 개인의 내면적 평온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강력한 요인이 된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많은 현대인이 정신적 불안을 겪는 이유는 스스로가 정의한 항산의 기준이 타인의 화려한 삶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맹자가 말한 선비의 기개나 안회의 안빈낙도, 또는 항산이 항심을 보장한다는 사고방식은 이제 유효기한이 지나지 않았나 싶다. 현대 사회에서 항심은 물질적 토대 위에 피어나는 도덕적 실천이 아니라 자본의 중력을 거스르려는 의지 그 자체로 보인다. 오히려 오늘날의 진정한 선비, 도덕적 주체로서 우뚝 서려는 인간다운 사람은 자신의 항산이 타인의 생존권을 침해하지 않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며 스스로의 안락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이들이다.

물론 자본의 논리가 삶의 가치를 규정하는 사회에서 경제적 안정이라는 토대 없이 고결한 인격만을 강조하는 것은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망민(罔民)은 정교하게 설계된 소비 알고리즘과 상대적 소외감을 조장하는 구조적 모순에서 발생함을 고려해 본다면, 경제적 풍요가 반드시 도덕적 완성이나 진정한 행복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국가가 망민의 그물을 걷어내고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그것이 인간 정신의 고귀함까지 자동적으로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물질적 안정이 도덕의 필요조건이라면 그 필요조건을 딛고 올라서서 자본의 중력을 거스르는 주체적 의지야 말로 도덕의 충분조건이다.

결론적으로 현대적 의미의 항심은 경제적 자유 실현을 통한 안정이 아니라, 빵만으로 살지 않겠다는 개인의 실존적 결단이 만날 때 가능하다. 빵을 구하는 길을 열어주는 국가의 정책과 망민의 그물에서 스스로 벗어나려고 할 때, 맹자가 꿈꾸었던 떳떳한 인간의 시대는 비로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