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사회/행복과 경제적 안정

[02경제적 안정] 5.지체된 조용한 혁명, 동아시아 행복격차

도량분계 2026. 3. 1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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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1MK8DsrmNI

2023년 기준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3, 2024년 구매력 기준 33, 20231인당 GDP 기준 22위를 기록했다. 또한 IMF 세계 경쟁력 보고서(2022)에 따르면 교육 경쟁력은 64개국 중 9위이며, 기대수명은 세계 1위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표에도 불구하고, 20243월 발표된 세계 행복도 보고서에서 한국은 143개국 중 52위를 기록했다. 이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인 35위에 해당하며, 아르헨티나, 라트비아, 멕시코, 칠레, 코스타리카와 비슷한 수준이다. 경제 성장과 물질적 풍요가 국민의 행복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이 한국 상황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실제로 이스털린조차 자신의 이론에 대한 반박이 이어지자, 그 재반박 사례로 한국을 꼽기도 했다.

숨 가쁜 근대화 과정을 거친 한국인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까. 사회학자들은 유교, 물질주의, 권위주의, 집단주의, 현세주의 등을 그 특징으로 꼽는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데이터로 본 한국인의 가치관 변동논문에서 한국인의 강한 물질주의 경향을 지적한다. 물질주의란 돈, 상품, 재화 등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인간의 고유한 가치와 이상을 등한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는 사람을 숫자나 상품으로 환원하여 인간 본연의 정서적 가치마저 무시하는 삶의 자세이다.

로널드 잉글하트는 국가의 경제 성장이 사회 변동을 유도하며 사람들의 행복 기준과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전근대 사회의 구성원들은 생존의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기 때문에 물질적 풍요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을 갖는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돈과 경쟁 그리고 경제 성장과 강한 국가를 지향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회가 일정 수준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 신체의 안전과 경제적 여유가 보장되면 사람들의 정서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공포나 분노와 같은 경쟁의 정서에서 벗어나 사랑과 인정 그리고 소속감과 같은 협동의 정서를 추구하게 된다. 지적이고 심미적인 만족이 삶의 목표가 되면서 생존 가치는 탈물질주의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 그리고 인권과 환경 보호로 전환된다.

잉글하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변화를 조용한 혁명이라고 명명한다. 이는 경제적 충족과 같은 객관적 지표보다 개인의 정신적 만족감이나 기쁨 같은 주관적 지표를 더 중시하는 가치관의 이동을 의미한다. 결국 사회 구성원이 직접 체감하는 경험과 만족감이 행복의 핵심적인 기준으로 설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의 핵심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성장한 세대가 기성세대와는 다른 가치관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생존의 위협이 적고 사회적 안전이 확보된 환경에서 자란 세대는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자아실현과 같은 가치를 탐색한다. 이는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이론과도 맥을 같이하며 사회 내 특정 세대의 가치관 변화를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세계가치관조사를 바탕으로 제작된 세계문화지도는 이러한 가치관의 다양성을 좌표 위에 보여준다. X축은 생존 가치와 자기표현 가치를 나타내는데 값이 커질수록 개인의 자율성과 인권 그리고 환경 보호를 중시하는 사회로 평가된다. Y축은 전통 가치와 세속적 합리적 가치를 구분하며 점수가 높을수록 종교적 권위보다는 과학 기술과 경제적 성공을 신봉하는 경향이 강하다.

문화 지도는 국가들을 8개의 클러스터로 분류하며 한국은 중국 및 일본과 함께 유교 그룹에 포함되어 있다. 서구 선진국들은 주로 지도의 우상향 방향에 위치하는데 이는 자본주의 발달과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가치관이 변화했음을 시사한다. 산업 사회로의 이행 단계에서는 세속적 합리주의가 강화되고 후기 산업 사회로 넘어가는 단계에서는 자기표현주의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잉글하트의 분석에 따르면 1981년 이후 많은 국가의 가치관은 1인당 국내총생산의 증가에 따라 일정한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경제 성장이 지속될수록 사회는 점차 세속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며 동시에 자기표현에 적극적인 형태로 진화한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풍요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넘어 개인의 자유와 생태적 가치를 지향하는 탈물질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그러면 세속합리성은 높으나 자기표현적 가치가 낮은 한국의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잉글하트의 계산식에 따라 탈물질주의자의 비율을 계산한 결과, 미국이 48%, 일본이 45%로 나타난 데 비해 한국은 14%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장덕진, 2017).

장덕진 교수는 경제와 안보를 중시하며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고 한국인을 설명한다.(한국일보 인터뷰) 일제의 강압정치, 해방과 이념대립, 한국전쟁과 분단, 병영국가, 민주화, 산업화 과정에서 빠른 사회적 변화, 변동은 많은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가져왔고, 개인의 불안으로 이어졌다. 전통사회의 붕괴에 따른 명확한 규범의 부재, 아노미 상황에서 세대, 계층, 지역 간 문화와 가치관의 갈등은 커졌고, 개인의 불안 또한 커졌다.

장덕진 교수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물질적 성장을 하고 싶어 애써 노력했고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탈물질주의 가치관으로 옮겨가지 못해 오히려 성장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정리한다.이미 서구의 학자들은 1970년대 아시아 국가들이 고도 경제 성장을 하는 이유를 찾을 때,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덕치와 인치, 가부장적 가족주의, 정실주의, 권위주의, 강한 교육열, 근면성실 강조 등 유교사상의 영향이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발전과 자유, 인권, 합리주의, 법치주의의 서양 가치관과 대비되는 특징이었다.

사회적 공적 의무가 가족 간의 결속과 유대감보다 우선되기 힘든 문화, 개개인의 능력 보다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아시아적 가치는 유교의 입신양명 출세지향의 문화로 고착화되고 개인의 행복에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 속한 나라들에서 세속적 합리성은 높으나 자기표현적 가치가 낮게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를 동아시아 행복 격차’(행복의 지도, 에릭와이너, 2021)라고 한다.

넓은 의미로 잉글하트의 문화지도에서 한 중 일 삼국의 국민들은 비슷하거나 유사한 정신세계를 보인다. 그럼에도 한국인이 일본인 보다 더, 중국인만큼이나 현세주의적 물질 가치를 중시, 숭배하는 것과 중상류층 이상의 사람들이 보이는 삶의 불안은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사회문화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우승열패의 사회 경쟁구조, 경쟁심리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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