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탐구생활 : 도량분계의 필름

어쩔 수가 없다, NO OTHER CHOICE, 2025

도량분계 2025. 10. 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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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QINnYehCvwE

세상사 원래 그러한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불가피하다.

인간의 가치를 내면의 성숙이나 인격으로 측정하는 것은 인류역사에서 예외적이었던 것 같다. 대신, 한 사회가 정해놓은 남부럽지 않은 생활수준이라는 기준선에 따라,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 개인은 괴로움과 굴욕을 느끼고, '정상의 삶'에서 배제되었다는 수치심에 시달린다.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인위적인 결핍감을 주입하며 소비를 부추긴다. 가진 자들의 사치스러운 삶은 대중의 선망을 넘어 숭배의 대상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가난의 굴욕소비의 강박이라는 굴레 속에서 자포자기와 무력감을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정상성이라는 이름의 허상에 대한 잔혹한 초상화이다. 겉보기에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는 한 중산층 가족, 테니스를 치고 첼로를 연주하는 영화 속 모습은 사회가 정의하는 정상성의 기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괴기한 정상성을 시대나 사회의 병폐로 보기에는 약간 애매하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아니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삶이기 때문에 정상가족이데올로기는 너무나도 강력하고 친밀하다. 그래서 어쩔 수가 없다

소중히 가꿔온 정원과 온실, 테니스 라켓과 첼로 선율은 잔혹한 행위와 교차되는데, 이러한 장면은 사회가 부여한 정상성의 상징들이 얼마나 쉽게 파괴되고 기괴한 욕망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메타포로 읽힌다.

하버드대 진화심리학 교수인 디어드리 배릿에 의하면 현대인은 성적 욕망, 귀여움, 고칼로리 음식, 중독성 있는 매체 등 다양한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i)에 무감각적으로 반응한다다. 포르노그래피, 성형, 다이어트 열풍, 멜로드라마는 성적 본능을 과장되게 자극하고, '동안'이나 귀여운 애완동물은 양육 본능을 이용한 상업적 전략이다.

이러한 초정상 자극을 보여주는 미디어와 SNS는 현실과 동떨어진 허상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중독시킨다. 이러한 초정상 자극은 탈진실(post-truth)’의 시대에, 사람들은 진실 대신 감정과 느낌에 호소하는 것에 더 열광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 서슴지 않으며, 복잡다단한 심정은 자기 방어와 타자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으로 표출된다. 잠재적 경쟁자, 취업예비자의 제거, 이것이 어찌 정상(正常)이랴. 아니다 이것이 어찌 정상이 아니겠는가. 어쩔 수가 없다.

출처 : 다음영화

영화 어쩔 수 없다의 마지막 장면, 공장은 AI와 로봇, 단 한명의 관리자로 운영된다. 이제 노동시장에는 톱클래스만 남을 것은 자명하다. AI와 로봇이 발전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결국 기술이 사람을 빠르게 앞서가면서 사회적 관계는 극도로 혼란에 빠지게 만들 것이다. 인공지능은 법률가, 예술가, 의사, 약사, 회계사, 이른바 전문직들이 수행하는 복잡한 업무를 근본적으로 대체할 것인가. 그냥 보완할 것인가. 논란이 있었지만, 결론은 대체된다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이미 줄어든 중산층이 하층으로 밀려서 떨어지면, 소득 불평등은 심화 되고, AI와 로봇 마저 인간의 잡다한 일처리를 넘어 숙련노동을 대신하게 되면, 결코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대한 산업예비군 프롤레타리아트, 예비 인력들만 남는 세상이 될 것이다.

중산층의 삶은 단순한 경제력이나 자산을 넘어선 다양한 요소들로 유지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대중문화와 안정적인 일자리, 소속감을 제공하는 공동체와 장소, 그리고 문화적 의례와 사회적 관계가 그 기반이다. 또한 삶의 보람과 함께 타인이 설계한 허상인 럭셔리와 명품 삶이라는 초정상 자극이 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으로 작용한다.

현대 사회의 중산층을 지탱하던 물질적 안정과 사회적 소속감의 토대가 구조적인 변화로 인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며 기존의 삶을 구성하던 가치들이 해체되는 과정은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어쩔 수 없다.

지나온 인류의 발자취, 아프리카를 떠나 채집과 사냥, 농업과 목축, 근대 산업 공장, 일자리와 먹거리를 책임져 왔던 인류.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생계수단을 찾아 헤 메는 세상이 다시 도래했다. 혼란과 갈등이 안정을 향하기까지, 많은 이들의 숙고와 절박함이 그 과정을 함께 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 위기와 변화를 극복해 내지 않을까. 다만 그 여정에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일론 머스크가 그리는 화성 개척에너지 비용 제로 사회그리고 보편적 기본소득을 넘어선 보편적 고소득(Universal High Income)의 구상은 기술 발전 속도가 인류의 적응력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머스크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제는 단순한 복지 확충 차원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정의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하는 시점임음 분명하다.

아인슈타인은 문제를 만들어낸 의식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서는 결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라고 한다. 평범한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도는 불편하거나 어려울 수 있지만 문제를 만들어낸 낡은 의식에서 탈피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새로운 세상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는 현재의 고착된 사고방식을 넘어서는 것에서 시작된다. 다만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에 갇힌 사고를 버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고 차원 높은 의식의 전환은 아마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조금씩 이루어 질 것이다.

이 과정은 낙후된 가치나 과거의 영광을 놓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극심한 고통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과 새로운 흐름 사이에서 격렬하고 절박한 투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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