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탐구생활 : 도량분계의 필름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The Kirishima Thing, 2014

도량분계 2025. 8. 1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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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키가 크면서 잘생겼고, 머리도 좋아 공부도 잘하면서 운동도 잘한다. 더구나 여친은 최고 미모를 자랑한다. 폼 난다. 멋있다. 반대로 누군가는 키도 작고 못생겼고, 공부도 못한다. 여친은 당연히 없다. 찌질하다.
모범, 전범은 사회적 위계와 타인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 진다. 멋있는 인간을 뜻하는 신사,  선비, 사대부, 군자, 사무라이, 브라만.... 무의식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의미한다.

출처 : 다음 영화

서울대 아시아 연구소의 강성용 교수는 아리안족에 의한 인도 침공과 카스트 제도의 성립을 무력에 의한 정복이란 생각에 반대한다. 전쟁과 같은 폭력이 있었겠지만, 생각보다는 비폭력적으로 원주민, 피 지배계층의 자발적 복종에 의해 힌두의 질서가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리안 족의 문화, 신화를 비롯한 제사, 세상을 설명하는 그럴듯한 철학체계, 브라만, 폼 나는 사람들에 대한 선망이 인도사회 기본 질서를 결정지었다는 것이다.
덧붙여 인도의 잔혹한 사티 문화, 남편이 일직 죽으면, 시체를 화장할 때 아내가 산 채로 불 속에 뛰어들어 남편의 시체와 함께 불타 죽는 악습 또한, 조선의 열녀문 문화와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우리’도 폼 나는 가문임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 그런 악습을 당연시하게 한다.
폼 나게 살고자 하는 이런 욕망은 채워질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결핍을 가져온다. 조선 사회 과거에 급제하고 양반 관료로 사는 이들의 수는 전체 인구 700만 중에서 10,000~15,000명 규모로 추정된다. 전 백성의 양반 관료에 대한 선망은 세계 가장 높은 교육열의 바탕이다.
어쨌든 한국사회 고등학생들에게는 SKY 대학은 선망의 대상이고 과잠(학과 점퍼)는 자신이 명품임을 인증하는 과시 수단이다. 출신 명문 고교를 넣는 것은 덤이다.
라캉은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L'inconscient, c'est le discours de l'Autre)'이라고 종종 표현했다. “타자”는 나 이외의 모든 것으로 나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말하고, “타자의 담론”은 곧 사회적으로 용인된 질서의 체계를 뜻한다. 따라서 무의식이란 결국, 보이지 않는 위계, 서열, 질서가 개개인에게 내면화되는 메커니즘을 뜻하게 되고, 이 무의식은 종종 뜻하지 않게 여러 외부 효과를 가져 오게 한다.
키리시마는 학교 내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멋있는 인물, 즉 '이상적인 타자'이다. 그럼으로써 1류와 2류 3류의 질서가 형성되어 학생들 각자에게 '너는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명령을 내린다. 배구부원들은 그가 없는 상황에서 명품 리베로, 키리시마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야구부원들은 키리시마에 열등감을 느낀다. 키리시마 후광에 묻혀 자신의 지위와 서열을 지키고 있던 이들....
키리시마가 잠수 타는 와중에 찌질한 영화부원들은 옥상에서 좀비 영화를 찍으며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위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 장면이 의미하는 바, 키리시마라는 타자의 담론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나, 자신들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순간이다. 이들은 사회적 위계나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들의 무의식을 구성하는 '진정한' 욕망을 마주한다.
한국사회의 ‘키리시마’는 누구인가? SKY 명문대를 졸업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제 철마다 해외여행을 다니고 집은 강남 신축 아파트에 살면서 차는 ‘벤비아’를 모는 이들일까? 멋있는가? 폼 나는가?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허상일 뿐이다. 타인(타자), 사회적 강자의 욕망에 이용당하는 삶, 멋 대가리 없다. 타인이 설정한 기준에 못 미친다고 열등감 가질 필요 없다.
그 무엇보다 키리시마 다운 키리시마가 없는 것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인의예지를 실천하고 약자를 돌보며,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존경받을 만한 멋있는 사람, 전범, 모범이 없는 것이 더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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