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사회/행복과 경제적 안정

[02경제적 안정] 11. 니콜라와 헨리가 보내는 경고

도량분계 2026. 4. 8. 16:47
반응형

https://youtu.be/Cj9XRmuefKE

유럽의 복지국가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순탄한 과정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1970년대 경제 위기를 거치며 보편 복지가 성장을 저해하고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복지국가 실패론에 직면하였다.

이에 대해 1980년대 복지 개혁은 신자유주의 기조를 가진 우파 정당들이 시작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중도 좌파 정당들로 확대되었다. 영국의 대처 행정부와 같은 보수 진영은 민영화와 규제 완화를 통해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려 하였고, 이후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등장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나 독일의 슈뢰더 정부는 저성장과 고령화라는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3의 길을 표방하며 복지와 노동을 연계하는 개혁을 주도하였다. 또한 유럽연합과 같은 국제기구는 각국에 사회투자 전략을 권고하며 개혁의 촉매제 역할을 수행하였다.

유럽의 복지 개혁은 복지 지출을 단순한 소비가 아닌 인적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생산적 행위로 재정의하는 과정이다. 보육과 교육에 집중 투자하여 여성과 노년층의 경제 활동 참여를 독려함으로써 장기적인 조세 수입을 확보하려는 사회투자 전략이 그 중심에 있다. 그리고 유연안정성 모델을 통해 해고를 유연하게 허용하는 대신 높은 수준의 소득 보장과 재취업을 위한 직업 훈련을 제공하였다. 독일은 하르츠 개혁을 통해 복지 수급자의 책임을 강조하며 노동 시장 복귀를 강제하는 활성화 정책을 시행하였다. 연금 제도 측면에서는 인구와 경제 지표에 따라 지급액이 자동으로 조정되는 명목확정기여형 방식을 도입하여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였다.

유럽의 복지 국가 모델인 사회투자 국가 모델이 가장 크게 비판받는 지점은 복지 혜택의 불균형이다. 교육과 보육, 직업 훈련 등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는 주로 이를 활용할 준비가 된 중산층이나 고학력자에게 혜택이 쏠리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당장 생계가 막막한 최하층 빈곤층이나 저숙련 노동자들은 이러한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어, 복지가 오히려 사회적 격차를 고착화한다는 비판이 따른다.

또한 덴마크의 유연안정성이나 독일의 하르츠 개혁은 노동 시장을 활성화했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의 질 저하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기업의 해고 유연성은 즉각적으로 발휘되는 반면, 국가의 재취업 지원과 소득 보장은 예산 제약이나 행정적 한계로 인해 불충분한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수혜자들은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미니잡 등)로 내몰리며 '일하는 빈곤층(Working Poor)'이 양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모델이 장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회의론이 팽팽하게 맞선다. 지속 가능한 생존 전략(생산적 복지론)으로서 이 모델이 지속 가능하다고 보는 측은, 과거의 사후 구제 방식은 고령화 사회의 재정을 고갈시키지만, 사회투자는 국민의 생산성을 높여 장기적인 조세 수입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변화한 인구 구조와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복지 국가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하고 합리적인 진화라는 평가이다.

반면, 한시적인 갈등 봉합 미봉책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부정적 평가도 강력하다. 사회투자의 성과(조세 수입 증가)가 나타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고령화로 인한 지출 압박은 당장 눈앞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차이를 메우기 위해 국가 부채가 늘어나거나 '니콜라''헨리' 같은 납세자들의 부담이 가중되면 사회 계약은 언제든 파기될 수 있다.

프랑스의 니콜라’(Nicolas Qui Paie, 돈내는 니콜라)는 성실히 세금을 내지만, 정작 국가는 타인만을 위해 돈을 쓰는 것 같다는 청년의 좌절감을 표현한다. 영국의 헨리('HENRY':High Earner, Not Rich Yet)는 고소득층임에도 생활비와 세금 부담으로 인해 부를 축적하지 못하는 젊은 전문직 세대를 상징한다. 이들의 푸념은 다음과 같다. "매일 열심히 일하지만 아직 집은 사지 못했다. 부자는 아닌데 부자 취급을 받으며 월급의 절반을 세금으로 낸다. 그 돈은 은퇴자의 크루즈 여행과 연금, 중동에서 온 이민자의 복지와 아프리카 개발 원조에 빠져나간다."

2025. 5월 프랑스에서 ‘국가 마비’ 운동이 벌어진 가운데 , 북부 도시 릴에서 프랑스 국기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리고 복지 혜택의 불균형으로 인해 소외된 계층이 극우 또는 극좌 포퓰리즘 세력으로 결집하면서, 개혁을 뒷받침할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결국 현재의 개혁은 시스템의 붕괴를 잠시 유예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결국 유럽 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변질되어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극단 세력이 성장하는 토양이 된다.

유러피안 드림의 핵심은 공동체적 연대를 바탕으로 한다. 이민자 통합 실패와 극우 세력의 부상이라는 현실 앞에서 사회민주주의의 포용적 사회 이상과 이념의 빛은 바래가고 있다. 리프킨이 예찬한 포용적 사회의 이상은 경제적 불황과 맞물려 자국 우선주의, 반이민 정당의 득세와 혐오 범죄로 퇴색되었다.

좌파와 우파는 정말 다른가? 좌파와 우파의 복지 정책이 결과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복지 포퓰리즘' 진단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극좌파는 부의 재분배를 위해 초고율 과세를 주장하고 좌파는 사회적 투자를 통해 계층 이동 사다리를 복원하려 한다. 우파는 규제 완화와 지출 효율화를 통한 조세 경감에 주력하며 극우파는 이민자 배제를 통한 자국민 우선 복지를 내세운다. 좌파가 사회 서비스 지출을 늘린다면, 우파는 감세를 통해 가처분 소득을 늘리겠다고 약속하지만, 두 방식 모두 국가 재정 건전성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 성격을 띤다.

따라서 좌파든 우파든, 집권정치 세력은 표심을 의식해 결국 유권자들이 싫어하는 '증세''복지 축소'를 강력하게 추진하지 못하고, 부채를 늘려 지출을 유지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중도 수렴화 (Convergence)와 기득권 보호는 결국 미래 세대의 불만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감당 못할 재정 유지를 위해 미래세대의 돈을 빚으로 끌어와 쓰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형 복지모델복지국가로의 이행을 위해서는 유럽 복지국가의 정책 행보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들 국가의 노력은 단순히 풍요로운 경제력의 결과가 아니라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의 산물이다. 이들 국가는 복지를 단순한 시혜가 아닌 국가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사회적 계약으로 재정의하며 합의를 끌어냈다. 이 경험은 복지국가로의 합의가 이타심이나 선의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갈등의 당사자들이 서로를 공멸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국가적 생존을 위해 각자의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하는 합리적 계산이 밑바탕이 되었다. 현재 한국 사회가 겪는 효율성과 형평성 사이의 충돌이나 복지를 특혜로 보는 인식의 차이는 앞서 복지국가에 진입한 국가들도 공통적으로 경험했던 진통이다. 복지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재구성되는 유동적인 사회 계약이며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핵심 장치임을 인정하는 사회적 대타협 시도를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유럽의 사례는 한국 사회에 재정적 수치를 넘어선 세대 간 신뢰의 문제를 시사한다. 고령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른 한국은 연금 고갈에 대한 청년층의 공포가 실존적이며 특정 계층의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에서는 조세 저항과 정치적 분열이 심화된다. 특히 한국 청년들은 부양 의무보다 개인의 생존과 자산 형성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뚜렷하여 세대 간 부의 전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에 민감하다. 영국의 헨리 계층의 사례에서 보듯 고소득 청년들이 세부담으로 인해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겼다고 인식하면 이는 국가 성장 동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한국 정치권 역시 선거를 의식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미루는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이며 세대 갈등을 방치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단순한 수치 조정을 넘어 미래 세대의 몫을 보장한다는 강력한 제도적 신뢰를 구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