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와 ‘사도, 2015’는 조선 왕실의 가장 비극적인 권력 투쟁을 다루고 있으나, 그 비극을 바라보는 시선은 큰 차이를 보인다. ‘왕과 사는 남자’는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 강원도 영월로 유배된 단종과 그를 곁에서 지켜보는 평범한 인물의 관계에 집중한다. 이 작품은 화려한 궁궐이 아닌 고립된 유배지를 배경으로 하여 단종이라는 인물이 겪는 인간적인 고독과 그를 향한 백성과 주변 사람들의 연민, 애정을 서글프게 또는 코믹하게 그려낸다.

또 다른 적통 왕자로 죽은 인물, 사도세자를 그린 영화 ‘사도’는 권력의 심장부인 궁 내부에서 벌어지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처절한 심리적 갈등과 파멸을 다룬다. 영화 ‘사도’는 양반의 일자리 경쟁에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줄타기 권력유지에 골몰, 강요하는 국왕 영조와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 무너져가는 아들의 관계를 통해 조선시대 왕의 자리가 갖는 엄혹함이 어떻게 천륜을 파괴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두 사건 모두 필연적으로 국왕의 절대적 권위와 신료들의 보필이라는 두 축이 끊임없이 균형을 탐색하는 조선의 정치 구조에서 비롯된 사건 과정이었다.
조선은 왕조 설립 시기부터 왕권과 신권의 미묘한 대립을 경험 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왕조의 수립의 실질적인 세력은 지방에서 성장한 신진 사대부 세력이었기 때문이었다. 신진사대부는 알다시피 성리학을 철저히 신봉한 세력이었고, 그들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성계 일파의 무인세력을 택했다. 새로운 왕조의 설계자 신권 마인드 삼봉 정도전과 태종 이방원의 왕권 강화 의지가 처음부터 충돌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태종의 왕 중심의 중앙집권 정치가 이후 세종, 성종으로 이어지는 치세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조선 초기 강력한 왕권이 신권을 누른 것은 바람직하게도 여겨진다.
조선 초기 정치 구조는 국왕의 절대적 권위와 신료들의 보필이라는 두 축이 끊임없이 균형을 탐색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지방에서 계속해서 중앙정부의 문반 무반 관료자리를 놓고 계속해서 입직, 상경하는 열망이 그 균형을 흔드는 과정이었다.
문종의 승하 이후 어린 단종의 즉위와 대신들의 권력 장악은 신권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수양대군은 이를 왕실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1453년 계유정난을 통해 신권 중심의 의정부 서사제 체제를 국왕 중심의 육조 직계제로 되돌리려는 과격한 시도를 하게 된다. 이후 세조는 정적들을 숙청하고 즉위하여 강력한 전제 군주제를 구축했으나 사육신 등의 복위 시도로 인해 정통성의 위협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양녕대군은 왕조의 안정을 위해 단종이라는 근본적인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냉혹한 정치적 논리를 강력히 내세웠다. 그의 주장은 세조에게 조카를 사사할 수 있는 정치적 명분을 제공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세조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고 왕실 내부의 질서를 재편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레고리 헨더슨은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조선시대 중앙정치 싸움의 비법은 중상비방, 중상모략이다. 동서 분당 이전부터 양반 계급 내 권력 투쟁은 일상적이었다. 그 뒤를 이어받은 한국정치 또한 중상비방으로 얼룩져 있다.”라고 평가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적을 깎아 내리는 술수인 중상비방과 중상모략만 남은 한국정치의 풍경. 그 각론은 모르쇠, 궤변, 논점 흐리기, 잡아떼기, 물귀신작전이다. 마키아벨리가 울고 갈 정도다. 한명회는 조선의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마키아벨리스트이다.
그러나 그레고리 헨더슨이 폄하하는 조선, 또는 대한민국의 정치만이 더럽고 치사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권력의 역사는 지배층끼리의 암투로 점철된 지저분한 막장 드라마와 같다. 부자간, 형제간 모자간, 친척 간 이 싸움은 대부분 왕과 왕족, 귀족, 기사, 사대부, 사무라이, 교회, 환관 등 일반 민중의 삶과는 철저히 분리된 이들 사이의 생존 게임이었다.
서양의 정치는 교황권과 왕권의 대립 혹은 영주들 사이의 분권적 갈등으로 조각난 거울처럼 파편화된 권력의 조각을 맞추는 싸움이었다면 중국의 정치는 환관의 긴 소매와 외척의 장막, 관료들 뒤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질식의 역사였다. 일본의 경우 막부와 천황, 혹은 영지 내 사무라이 집단 간의 차가운 칼날 끝에 매달려 영지를 탐하는 무력 충돌이 정치의 중심이었다.
조선은 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양상을 띠었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한 조선에서 갈등의 핵심은 왕권을 수호하려는 왕족과 이를 견제하고 국정 주도권을 잡으려는 관료 사대부 간의 구조적 대립이었다. 그 과정에서 지방이라는 숲에서 자라난 사림이라는 이름의 붓들은 중앙의 좁은 문으로 계속 몰려들었다. 그러나 왕좌 아래 마련된 의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관직이라는 한정된 생존의 땅을 두고 벌이는 갈등은 성리학이라는 명분의 옷을 입은 채 붕당이라는 처절한 경쟁의 숲을 이루었다. 그것은 영토를 베어 가던 서구의 봉건제나 목을 베던 일본의 난세와는 다른 붓과 논리의 전쟁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오늘날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경쟁이나 조직 내의 파벌 갈등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권력과 생존이 결합한 곳에는 항상 민중의 삶과는 무관한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해 왔음을 역사는 증명한다.
아니다. 이제 왕권과 신권은 사라진 민권의 민주주의 시대에, 그게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장관이든, 그 권력이 우리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그 무엇을 결정, 선택하는 정치과정에서, 국민 스스로, 또는 고학력 엘리트 계층끼리의 일자리 job 투쟁, 자리 경쟁에 나선 것은 불가피하다. 영월 광천골 엄홍도와 마을 사람들, 그들은 정치라는 이름이 놓친 온기를 대변한다. 왕권과 신권의 시대가 저물고 민권의 민주주의가 정착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치는 한정된 자리를 차지하려는 엘리트들의 처절한 생존 게임으로 비친다. 헨더슨이 지적한 중상비방의 풍경은 자격과 일자리를 둘러싼 현대의 경쟁 구도 속에서 형태만 바꾼 채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권력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리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소용돌이 밖에서 묵묵히 삶을 일구며 정의를 실천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이다. 정치는 결국 누구의 어떤 자리를 쟁취하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고통을 덜어주는가에 그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영화를 통해 비극을 반추하는 이유는 권력의 냉혹함에 매몰되지 않고 엄홍도가 보여준 인간의 가치, 올바름, 義를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 속에 뿌리내리기 위함이라고 애써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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